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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유물

야외전시

22,000여평의 야외전시장은 100여점의 민속자료와 시설물이 조성되어 전통문화의 향기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물레방앗간과 연자방앗간, 태실을 비롯하여 갖가지 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석물의 종류로는 맷돌ㆍ확독ㆍ연자방아 등 생활도구, 벅수ㆍ입석ㆍ장승ㆍ조탑 등 민간신앙의 대상물, 동자석ㆍ문인석ㆍ부도 등 묘지 부속물, 그리고 광주시 문화재인 십신사지 석불(유형문화재 제2호)과 석비(유형문화재 제3호)가 있다.
또 1996~97년에 발굴한 광주읍성의 하부구조를 복원ㆍ전시하고 있고 최근에는 장독대가 신설되었다.
이외 그네뛰기 등 민속놀이시설과 모정, 숲그늘 등 편익시설도 설치되어 시민 여가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고있다.

석재유물

선돌

선돌

선돌은 고인돌(支石墓)과 함께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의 하나로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자연석을 그대로 세우거나 일부분을 다듬어 세우기도 한다. 형태는 주로 둥근 기둥이나 모난 기둥 또는 넓적한 판석이나 타원형에 가까운 자연석이며, 크기는 보통 높이 1.5~3m, 폭 1~1.5m, 두께 30~60cm 정도이다. 마을의 입구나 배후에 세워져 마을의 수호신 또는 이정표의 기능을 한다. 마을에 따라서는 재복(財福)이 물길 따라 흘러가는 것을 막아주는 수구막이의 기능을 하는 곳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월대보름에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마을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이 선돌은 대초댐 수몰지구인 나주군 다도면 남대마을에서 옮겨온 것이다.
석등

석등

석등은 사원의 경내를 밝히기 위해 법당 앞에 세우는 등기물(燈器物)로, 부처의 광명세계를 표현한다.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寶林寺)의 석등(국보 제44호)과 장흥군 관산읍 천관사(天冠寺)의 석등(전남 유형문화재 제134호)을 복제한 것이다. 두 개의 석등 모두 상하 각 부분이 8각을 기본으로 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네모형의 지대석(地臺石)과 팔각의 하대석(下臺石)을 놓아 화사석(火舍石 : 불집)을 받치고, 옥개석(屋蓋石 : 지붕돌)을 덮었다. 특히 이 석등의 하대석과 옥개석에 조각되어 있는 귀꽃은 이 시대의 예술적 역량을 잘보여주고 있다. 보림사 석등은 영험이 있어 함부로 손대면 재앙을 당한다는 속신이 전해지고 있다.
물발아확

물방아확

물방아는 방아채 끝의 물통에 물이 담기고 비어짐에 따라 곡식을 찧는 방아이다. 찧어질 때는 벼락처럼 큰 소리가 난다 하여 벼락방아 확이라고도 부르며 다른 확에 비해 매우 크다.
안반

안반

떡을 칠 때 받쳐 사용하는 판으로 주로 나무로 만들지만 견고한 돌에 홈을 파 만들었다. 떡버텅이라고도 한다.
물레방아확

물레방아확

물의 힘으로 돌아가는 물레방아에 사용되는 확이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디딜방아 확보다 크고 깊이가 깊다.
입석

입석

광주시 북구 오룡동 신흥마을의 입석으로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자연석이다. 정월 대보름날 풍요를 기원하고 액을 물리치기 위하여 당산제를 지낸다.
벅수

벅수

동네입구나 길가에 세워 잡귀가 접근하는 것을 막는 석장승이다. 마을의 수호신, 마을의 경계 표시, 이정표 역할 등을 겸한다.
남근석

남근석

남근 숭배사상은 남방계통의 풍습으로 풍요와 생산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가계를 이어갈 아들이 없을 때 기원하는 대상물이다.
해태

해태

해태는 옳고 그름과 선악을 판단할 줄 안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화재를 예방하고 잡신을 쫓기 위한 신앙적 목적에서 해태상을 세운다.
들돌

들돌

일꾼들이 힘을 기르고 다산ㆍ다복ㆍ강령을 위해서 들었던 동글동글한 돌이다. 소년 일꾼들은 이 돌을 들어야 어른 축에 끼일 수 있었다.
보리방아확

보리방아확

동력으로 확 속에 설치된 회전기구를 돌려 보리를 찧었던 도정기구다. 20세기 중반에 사용되었으나 보편화되지는 못하였다.
굴레

굴레

굴레는 나무나 돌을 원통형으로 깎아 만들며 해동(解凍)이 될 때 보리밭을 눌러주거나 염전바닥을 편평하게 다질 때 사용되는 도구이다.
말방

말방

말을 타고 내릴 때 딛고 오르내리기 위한 디딤돌, 통상 대문 앞에 놓이며 말을 맬 수 있는 고리가 달려있다.
쇠돌

쇠돌

방짜유기점에서 쇳물을 부어 분량을 헤아리는 돌. 각 홈에 들어가는 분량은 1관(3.75kg)으로 징 1개를 만들 수 있다.
샘돌

샘돌

두레박이나 바가지로 물을 길러먹었던 우물의 표면에 설치하였던 돌 구조물. 우물정(井)자나 정사각형으로 조립한 기법이 우수하다.
화독

화독

마당에 설치하여 어둠을 밝히는 등기물(燈器物). 집안의 큰 행사를 치르거나 가을걷이 할 때 관솔로 불을 지핀다.
문인석

문인석

능묘 앞에 세우는 사람 형상의 석조물로 문석인(文石人)이라고도 한다. 보통 관복차림에 홀(笏)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연자방아

연자방아

연자방아는 한꺼번에 많은 곡식을 찧거나 빻을 때 사용하는 도정기구로 연자매라고도 한다. 둥글고 판판한 돌을 아래짝으로 놓고 옆으로 세워 얹은 위짝을 방들로 연결하여 굴리면서 알곡을 찧는데 인력으로 돌리기도 하지만, 말이나 소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탑

조탑

조탑은 구례, 곡성, 광양, 화순, 담양 등의 산간지역 마을 입구에 많이 세워져 있다. 주변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원형으로 쌓고 윗돌을 올려놓은 형태의 조탑은 당산제와 비슷하게 해마다 탑제(塔祭)를 모시는 마을 신앙의 대상물이다. 조탑은 학자에 따라서 적석형장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마을의 지맥(地脈)이 허한 곳을 다스리기 위한 산천비보(山川裨補)의 기능과 마을의 재물(財物)이나 복록(福祿)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수구막이 기능을 겸하고 있다.
태봉산태실

태봉산 태실

태봉산은 1967년까지 북구 신안동에 있었던 해발 50여m의 나지막한 언덕이었다. 1872년에 작성된 「해동지도(해동지도)」에 실린 광주목지도에 고려왕자태봉(高麗王子胎峰)으로 설명되고 있는 등 그 실체가 소문으로만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던 1928년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암장한 무덤을 파헤치면 비가 온다는 속설에 따라 태봉산을 파헤치던 중 태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1624년(인조2년) 인조 대왕이 이괄(李适)의 난을 피하여 공주로 몽진(蒙塵, 피난)하였을 때 출생한 아지대군(阿只大君)의 태를 이곳에 묻었던 것이다. 홉이 깊이 패인 돌을 바닥에 놓고 홈속에 태를 담은 태호를 넣은 후 뚜껑을 덮는다. 백자태호(白磁胎壺) 1점, 명기석반(銘記石盤) 1점, 금박 1매가 함께 출토되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서낭당

서낭당

옛날에는 사람들이 통행이 잦은 동구 밖이나 고갯마루 신수(神樹)아래 돌더미가 있었는데 이곳에 마을과 토지를 수호하는 서낭신(성황신)이 있다고 믿었다. 정초에 부인들은 간단한 재물(財物)을 차려 놓고 가정의 안녕(安寧)을 빌기도 하였으며 사람들이 이곳을 지날 때에는 거리를 배회하는 악령을 떨치기 위해 두 세 개의 돌을 던지고 침을 뱉기도 하였다. 또 나뭇가지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비는 헝겊 조각을 걸기도 하고 상인들의 재리(財利)를 위해 짚신조각을 걸어 놓기도 하였다.
석장승

석장승

장승은 마을이나 사찰의 입구에 세워져 부정과 잡귀의 출입을 막고, 이정표 역할을 하며, 마을이나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기도 한다. 주로 나무로 만들지만 내구성이 좋은 돌로 만든 석장승도 다수 산재해 있다. 이 장승은 전라남도 나주군 다도면 운흥사 입구에 있는 석장승(중요민속자료 제12호)을 복제한 것이다.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은 탕건을 쓰고 툭 튀어나온 눈을 가졌지만 얼굴이 온화하고 인자한 노인 특유의 인상을 지니고 있다. 자연석을 살려 조각한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은 뒷면에 「강희(康熙) 58년」 이라는 명문이 있어 조선 숙종 45년(1719년)에 제작했음을 알려주는 민속자료이다.
맷돌

맷돌

밀이나 보리같은 곡물 등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 때 쓰는 기구, 윗돌과 아랫돌은 쇠나 나무로 고정되어 있고 홈에 L자형의 손잡이를 끼워 돌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윗돌과 아랫돌에는 홈이 있다. 줄여서 매라고도 부르며 작은 맷돌은 풀매라고 한다.
절구

절구

사람의 힘으로 곡식을 찧거나 양념을 빻을 때 쓰는 도구이다. 쑥돌로 만든 반구형확과 원통형 좌대가 장구형의 모양을 갖고 있다. 지역에 따라 도구통이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