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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민속

민속문화란 무엇인가?

어느 민족이나 오랜 세월을 통하여 외부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자체내에서의 발견이나 발명을 통하여 끊임없이 질높은 삶을 영위하고자 노력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민족마다 기후와 풍토에 맞는 고유의 민족문화가 형성된다. 한 민족의 문화중에는 외래문화를 쉽게 수용하고 시대성을 강하게 수반하는 문화가 있는 반면, 독자성과 주체성을 가지고 외래의 문화에 쉽게 동화되지 않으면서 수세대를 통하여 전승되어 온 문화가 있다. 즉 의식주나 기술 등 쉽게 받아들여지고 변하는 문화를 표층문화(表層文化)라고 한다면, 종교나 가치관 등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쉽게 변하지도 않는 문화를 기층문화(基層文化)라고 한다.

표층문화는 소수의 지배계층에 의하여 향유되고, 기층문화는 다수의 민중에 의하여 집단적으로 향유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기층문화는 고유성과 토착성을 지니게 되어 쉽게 변화하지 않아 역사적 전통성을 가지게 됨으로써 민족의 특질을 잘 나타내어 준다. 일제가 우리 민족을 지배하고자 할 때에도 민족의식이 깃들어 있는 기층문화를 말살함으로써 민족의 주체성을 말살하고 민족의식을 분열시키려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속문화는 이러한 기층문화를 바탕으로 신분이나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그 민족이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누려온 민중문화를 말한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사람이 생활하는 모든 것, 즉 입고 먹고 자고, 농사 짓고, 생각하면서 일생을 살아가는 민족생활상의 모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민속문화의 각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의식주 : 고유의 옷과 먹었던 음식, 그리고 사는 집의 체계와 생활
  • 생업 : 농업, 어업, 수렵, 채집 등 사람이 생산활동을 하는 것
  • 일상의례 : 사람이 태어나서 거치는 성인식, 혼례, 회갑, 상례, 제례 등 일생의 경로
  • 신앙생활 : 무속, 마을신앙(당산제), 가신신앙(성주·조왕)등 민족 고유의 신앙체계
  • 민속놀이 : 예로부터 전해오는 고싸움, 줄다리기, 윷놀이 등 전통적인 놀이
  • 세시풍속 : 설, 보름, 추석, 동지 등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반복되었던 풍속
  • 민속예술 : 판소리, 농악, 남사당패, 가면극, 민화, 민속공예 등 전통적 계승 예술
  • 구비문학 :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신화, 전설, 민담, 민요 등 구전자료

남도의 민속은 어떠한 환경에서 형성되었는가?

  • 널뛰기
  • 풍구질
  • 조개채취

옛말에 ‘백리만 떨어지면 풍속이 다르다(百里不同風)’ 고 하였다. 풍속은 요즈음 말로 문화라 할 수 있는데, 문화는 자연적 · 역사적 · 사회적 환경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니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전통시대에 각 지역마다 문화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 것은 당연하다. 이것을 우리는 지역적 특수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문화도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등과 같이 큰 권역으로 비교해 보면 우리만의 동질성이 있는 민족문화의 특질이 확연히 나타나는 바, 이를 민족적 보편성이라고 한다. 이처럼 민족문화는 보편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지역마다 나름대로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는 남도 민속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흔히 말하는 남도(南道)라는 용어는 ‘계룡산 남쪽과 섬진강 서쪽의 권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이 책에서는 범위를 ‘광주 · 전남’ 으로만 한정하고자 한다. 남도 민속문화의 형성 배경으로, 우선 자연환경적인 요인을 들 수 있다. 한반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우리 지역은 동쪽으로는 소백산맥으로 경상도와 경계를 짓고, 북쪽으로는 노령산맥이 가로질러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과 남쪽은 다도해와 연해 있다. 즉 동북쪽의 산간지역이 점차 서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평야지대를 만들어 결국 바다와 연결되는 대륙성고기압의 영향으로 한서의 차가 큰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고 있지만, 연안가 도서지역은 대체로 해양성 기후의 특징을 나타내어 온난하다. 대륙은 영산강, 섬진강, 탐진강 등 크고 작은 하천을 중심으로 곳곳에 넓은 평야가 발달하여 경지율에 있어서 전국 평균(21.9%)을 상회하는 30%에 이르고 있어 예로부터 한반도 제일의 곡창지대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까닭에 일찍이 벼농사가 발달하였고 고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즉 신라의 경주, 고려의 개성, 조선의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고유의 문화 전통은 더욱 독자성을 띠게 되어 언어 · 민 · 민간신앙 · 민가 등에 특색이 강하게 나타나고, 현대에 있어서는 유물과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전통문화의 보고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마한과 백제의 문화적 전통을 이어받아 해양문화적인 요소가 강하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는데 선사시대의 고인돌과 영산강 유역에서의 옹관묘의 출토유물과 규모에서 찬란한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여건으로 인해 중국의 남조문화(南朝文化)와 깊은 관련을 가졌던 백제는 삼국 중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고, 이러한 선진 문화전통은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오늘의 문화적 전통을 형성하였다. 통일신라시대 장보고의 해양왕국과 대외무역, 전남 해안의 항해술이 임진왜란 때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도 이에 기인한 것이며, 바다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어족자원은 ‘전라도 음식’ 으로 유명한 식생활문화의 바탕을 이루어준다.

이 지역은 세파와 타협하지 않으면서 외침과 불의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나 민족과 정의를 위해 싸웠기에 「의향(義鄕)」이라고 일컬어진다. 임진왜란 때 광주의 고경명(高敬命) · 나주의 김천일(金千鎰) · 화순의 최경회(催慶會) 등이 의병운동에 큰 활약을 하였고, 이순신장군이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지역의 민중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862년의 농민항쟁, 반외세 자주독립과 반봉건 민주화를 쟁취코자 했던 동학농민혁명, 일제의 침략에 끝까지 항거했던 한말의 호남의병,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光州學生獨立運動), 그리고 1980년 5. 18민주화운동 등의 역사적 활동은 민주화를 쟁취하고 본격적인 시민민주사회를 앞당기는데 기여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지리적으로는 한반도의 서남부에 위치하여 고대로부터의 문화적 전통이 잘 보존되어 왔고, 넓은 평야와 해안에서 나는 갖가지 산물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수준높은 문화를 발전시켜 왔는데, 양반문화와는 별도로 서민 대중을 중심으로 한 민속문화가 더욱 발전하였던 것이다.

남도의 민속문화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 고싸움 놀이
  • 줄다리기
  • 농악놀이

남도의 민속문화는 지역에 따라 육지부와 해안지역, 육지부의 평야지역과 산간지역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를 지역적 특수성이 나타난 문화권으로 정확히 나누기는 어렵다. 하지만 특징적으로 나타난 차이를 바탕으로 개괄적인 분류를 하자면 강을 중심으로 영산강문화권과 섬진강문화권, 그리고 도서문화권으로 나눌 수 있다.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광주·나주·영암·함평 등 전남의 서부지역은 드넓은 나주평야가 펼쳐진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로 쌀·면화·누에고치 등의 물산이 풍부한 곳이다. 이 지역은 서해안의 해로를 통해 남방문화와 연결되고, 한반도 서부의 평야지대를 통해 북방의 선진문화가 쉽게 유입될 수 있어 예로부터 문화의 교류가 활발함과 동시에 변화에 민감한 지역이다. 영암 시종면, 나주 반남면 일대를 비롯한 이 지역은 고대 선진문화의 중심지이었던 것도 이러한 여유이다.

이 지역의 민속문화의 특징적인 부분으로는 첫째, 농경문화에 바탕을 둔 의식과 놀이가 상대적으로 발달하였는데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산제와 줄다리기, 그리고 줄다리기의 앞놀이에서 유래한 고싸움놀이 등이 발달한 것이다.

둘째, 영산강의 수로가 서해안으로 통해 잇는 연유로 서해에서 나는 해산물이 많이 보급되고 있다. 옛날에는 영산포까지 해로로 접안할 수 있어 신선한 해물이 빠른 시일내에 보급되므로써 생선을 먹는데 익숙해 있다. 홍어는 동지나해에서 서해로 회유하는 경로인들 흑산도 연안에서 많이 잡혀 이 지역에서는 큰 행사 때 반드시 구비해야 할 필수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셋째, 풍요로운 물산을 바탕으로 성격이 쾌활하고 낙천적이면서 서정적이다. 그런 까닭에 여성적인 계면조(界面調)가 주류를 이루는 서편제와 잔가락이 많고 유연성 있는 우도농악이 발달하였던 것이다. 섬진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구례·곡성·광양 등 전남의 동부지역은 지리산, 백운산 등 소백산맥의 기슭에 위치한 산간지역으로 농토가 적고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하여 지역성을 반영하는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어 주변문화적 요소가 많다. 이 지역은 산간을 중심으로 하는 비보신앙이 발달하여 마을의 허한 곳에 탑을 쌓아 재복과 운수를 보호코자 하는 조탑(造塔)신앙이나 수구막이 신앙이 많다. 음식문화에 있어서는 남해에서 많이 나는 가오리가 홍어를 대산하며, 신선한 생선보다는 말리거나 소금에 절인 생선에 더욱 익숙해 있다. 또 산에서 나는 좀피(초피나무)가 향신료로 이용되고, 전라도의 고들빼기 김치는 이 지역의 특산품이었다. 판소리에 있어서 막자치는 우조(羽調)를 주류로 하는 남성적인 동편제, 농악 또한 가락이 빠르고 역동적이면서 웅장한 좌도농악이 발달하였다.

다도해와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는 신안·완도·진도·여수 등 도서지역은 우리나라 도서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고대에는 문화 전파의 경로였고, 한 때는 장보고의 청해진 경영으로 해상왕국과 해외무역이 활발했던 지역이지만 왜구의 침입으로 수차례 섬을 비우고 주민들이 이주하는 진통을 겪기도 하였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주민의 주류가 바뀌었으며 현존하는 주민들은 대개 임진왜란 이후 입도한 집단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주변과의 교류가 쉽지 않는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화를 지켜왔기 때문에 조선중기 내륙문화의 편린을 간직하고 있다. 또 이러한 환경적 요소는 보수적이면서도 배타적인 인성을 형성시켜 쉽게 변화하지 않음으로써 민속문화의 보고로 이야기되고 있기도 하다.

어업을 주업으로 하여 살기 때문에 바다생활이 안정되고 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기원하는 풍어제·갯제·영등제·당제 등의 신앙이 발달하였고, 뱃사람들의 불확실성은 씻김굿을 비롯한 각종 무속신앙의원형을 잘 보존케 하고 있다. 또 다시래기 등의 의례와 장산도들노래 · 가거도 멸치잡이노래 등의 노동요, 초분(草墳)과 같은 고유의 장법(葬法)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지역이다.

남도 민속문화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

  • 풍장소리(들노래)
  • 베매기
  • 짚신삼기

우리 지역은 평야가 넓고 비옥하며 온난다습한 기후조건으로 예로부터 인심좋고 살기좋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조건들은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큰 영향을 끼쳐 개방형의 전통가옥구조, 논농사 중심의 농경문화, 풍부한 음식문화, 문화와 예술의 발달 등 특유의 문화를 형성하게 하였다. 이러한 남도문화의 특성을 민속학자 지춘상교수는 예술성, 풍류성과 멋, 민중성으로 특징 지우고 있다.

먼저, 예술성을 보면, 우리나라 종합민속예술의 정수인 판소리는 전라도의 무가와 민요가 없었으면 탄생하지 못했을것이고, 판소리의 창자 중 이 고장 출신이 40%를 상회하고 있으니 이 지역 민중과 토호들의 뒷받침 아래 발달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악은 좌도농악과 우도농악으로 나뉘어 발달하면서 가락과 진법·춤사위 모두 타 지역에 비해 예술성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남도의 굿을 하거나 강강술래나 고싸움을 비롯한 민속놀이를 할 때, 놀 때나 일할 때에도 노래와 벗삼는 풍토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 상감청자의 창의성과 예술성, 소치 허련(小癡 許鍊) 가문 3대(三代)의 남종화, 송순·정철·윤선도 등의 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가사와 시조 등도 예술성 높은 남도의 토양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둘째, 풍류성과 멋이다. 남도의 가옥들은 시원한 건물 배치에 주위의 자연을 끌어들이고 연못과 조산을 만들어 멋을 즐기고 있다. 또한 경관이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기는가 하면, 마을단위로는 모정(茅亭)을 지어 휴식과 여유를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인심이 넉넉하여 손님접대 또한 푸짐하며, 입안을 휘어감는 감칠맛이나 재료의 조화미가 두드러진 남도음식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셋째, 민중성 즉 서민성이다. 이러한 민중성은 남도문화의 모든 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화려한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이나 판소리 명창 또한 민중들이었고, 줄다리기나 고싸움놀이 등에서 남녀노소, 반상을 가리지 않고 동참하여 놀고 즐긴다던가 강강술래에서 빈부귀천을 떠나 마을의 모든 부녀자들이 춤추며 밤을 지새는 것에서도 민중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민중성은 왜란과 호란시기의 의병으로 나타났고, 동학혁명과 한말의병으로 계승되었으며, 현대사까지 이어짐으로써 민주발전에도 기여하게 되었다.